그때 그곳에서는

2007년 5월 17일, 드디어 여행을 시작하다!

Doobe 2012. 7. 6. 02:47

2007년 5월 17일,

드디어 여행이 시작됐다.


그러나...

생각만큼 설레거나 기쁘지 않았다.

한국을 떠나면서 여행에 대한 기대나 설레임보다는 앞에 놓여있던 일을 드디어 헤치운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 여행은 내게 목적 그 자체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목적을 빨리 헤치우기 위해 허둥지둥 준비해서 나왔는데 앞으로 잘 해낼 수 있을까 걱정이 들었다.


엄마는 헤어질 때쯤 눈물을 글썽거리며 잘 다녀오라고 하셨다.

좀 따뜻하게 안아줄 것을. 무뚝뚝한 딸은 그냥 "왜 울어~" 하고 말았다. 그 때 엄마를 안아주지 못한 게 여행 내내 마음에 걸렸다. 그리고 여행 내내 한국에 다시 돌아갈 때는 엄마를 꼬옥 안아주리라 다짐했었다. 그리고 1년 반이 지나 돌아왔을 때 나는 엄마를 다짐대로 꼭 안아줬다. 


엄마를 뒤로 하고,

나의 여행의 시작은 눈물로 시작했다.

여행 시작하기 전에 주변 사람들로부터 많은 관심과 격려를 받았다.

그 과정에서 새삼 나같이 부족한 존재를 아껴주는 주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그들이 참 소중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왜!!

나는 이런 소중한 사람들을 떠나려고 하는가! 왜 날 생각해주는 친구들과 가족을 떠나 고생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함께 있는 동안에 그들에게 잘 하지 못한 게 후회스럽고 아쉬웠다.

여행을 마칠 때쯤은 그들의 존재가 더 소중히 여겨지겠지? 여행하면서 사람들과 관계의 소중함을 느끼고 돌아올 수 있겠지? 라는 기대를 가지며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시간을 제외하고 중국에서 2시간 경유하고, 오스트리아 빈에서 10시간 대기해야 했다.

중국이 우리나라보다 한 시간 늦고, 비엔나가 중국보다 6시간 정도 늦어 7시간 정도 느린 것 같다.

나는 오늘 하루 7시간을 벌어 살고 있다. 하루가 31시간이 된 것!

 

 


 

빈을 경유할 때 숙박을 걱정했었는데 다행히 오스트리아 공항에서 밤을 지샐 수 있었다.

빈 공항은 밖에 나가보지 않았지만, 규모가 작은 아담함 공항이었다.

빈 공항 안에서 창밖을 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를 보고 있자니 맘은 더 울적해졌다.

아침 일찍 수속을 밟아야 해서 의자에 누워 잠을 청했다.


비엔나 공항의 새벽. 공항에서 잠을 청한 사람은 나를 포함 세 사람이었다.

한 명은 싸이코 같은 국적 모를 백인 남성이었고, 나 그리고 쿠르드족 아일랜드 남성이었다.

잠을 자는데 공항의 새벽은 너무나 추웠다. 담요를 기내에서 가져올 것을 후회했다. 떨면서 자다가 일어나보니 다른 사람이 덮고 대기실 의자에 놓고 간 오스트리아 항공 담요와 쿠션이 있었다. 담요를 덮으니 추위가 가실 정도로 따뜻했다. 공원에 자면 신문지 한 장이 그렇게 고맙다더니, 그 생각이 떠올랐다.


그럼에도 너무 추워 새벽 1시 경 잠을 깼는데, 옆 자리에 자던 쿠르드족 아일랜드인이 깨어나 “How are you?" 하면 인사를 건넨다. 그는 사업차 이라크로 떠나는 아침 비행기를 기다린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쿠르드족’임을 가장 먼저 밝히고 아일랜드에 산다고 했다. 발음이 또박또박, 아일랜드인 같다. 나는 이라크로 간다는 사실에 놀라워했고, 그는 내가 1년 동안 여행할 것이라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그는 내가 중동여행을 할 거라고 하니 위험하지 않냐고 했다. 난 이라크로 가는 당신이 더 위험할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는 내게 남한과 북한 중 어디 출신이냐고 물었고, 왜 남북이 분단되었는지,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궁금해 했다. 이산가족 얘기를 하니까 쿠르드족과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쿠르드족이 터키에서 차별받고 일자리 기회를 얻지 못해 3D업종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그는 아일랜드에서 대학까지 나온 쿠르드족 중에서 엘리트에 속한다. 그는 성장배경 때문인지 종교가 없다고 했고, 무슬림을 별로 안 좋아하는 듯 보였다. 극단적 이슬람주의자들에게 종교에 대한 논쟁은 없다며, 이의를 제기하면 총살당한다고 했다.

 

그리고 여성이 남성에 비해 낮은 지위에 머물게 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했다. 남성은 여러 명의 부인을 거느릴 수 있지만 여성은 남편 외에 다른 남자를 만날 수 없다는 것이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한국 역시 남성중심적이고, 정치하는 여성이 많지 않다고 하자 매우 놀라워했다.

 

그는 매우 친절했고, 말을 조심스럽게 건넸으며, 종교, 정치에 관한 자기 견해가 뚜렷했다. 세계 곳곳에 쿠르드족이 흩어져 억압받는 현실에 대해 설명하며, 아일랜드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아일랜드 내에서의 쿠르드족의 소외, 기독교-카톨릭간의 분쟁에 대해 얘기했다. 나는 그에게 쿠르드족 언어를 어떻게 배웠냐고 묻자, 집에서 부모들이 글과 언어를 가르치며 자신들의 언어를 지켜나간다고 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중동지역 여행할 때 조심하라고, 삐끼들이나 속임수가 많다며 주의하라고 했다.
그는 친절하고 사회성이 좋은 사람같아 보였다. 그와의 대화는 참 흥미로웠고 지루한 대기 시간을 그가 즐겁게 만들어주었다. 그는 내가 여행을 통해 만나 진지한 얘기를 나눈 첫 번째 사람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기억에 남는다.